책 소개

아버지의 라듸오

정가 : 15,000 원

  • 작가명 : 김해수,김진주

  • 출간일 : 2016-04-22

  • ISBN : 9788991418202

  • 쪽 수 : 240

  • 형 태 : 145 *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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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959년, 국산 라디오(금성 A-501, 등록문화재 제559-2호)를 처음 만들어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엔지니어 故김해수의 일대기
산업화의 주역 아버지의 기록을 민주화의 주역 딸 김진주가 엮어냈다

지지직거리는 ‘아버지의 라듸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일제와 해방,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우리의 뿌리 깊은 기억과 새로운 희망을 일깨운다


목차

[ 차 례 ]



엮은이 머리말 | ‘아버지의 라듸오’가 들려주는 이야기 9

지은이 머리말 | 내가 물려주고 싶은 엔지니어 정신 35



1 부 도쿄에서 엔지니어가 되다

동네에서 소문난 악동 42

집안 내림이었던 낚시 취미 48

도쿄로 유학을 간 소년 54

숨어서 배운 라디오 기술 58

일본인도 탐낸 최고의 엔지니어 63

광산에서 맞은 조국 해방 70



2 부 해방된 조국의 빛과 어둠 속에서

고향에서 스타가 된 사연 80

첩첩산중에 최초로 밝힌 전깃불 85

좌우익을 넘나든 ‘전기 의사’ 98

내 친구 강대봉의 죽음 109

전쟁통의 소안도 피난살이 117

국제시장 ‘화평전업사’ 개점 125



3 부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들기까지

금성사 수석 합격과 라디오 개발 132

한국 전자공업의 선구자들 138

첫 국산 라디오 ‘A-501’의 탄생 144

거듭되는 실패의 가시밭길 150

박정희 대통령과의 극적인 만남 159



4 부 멈추지 않는 엔지니어의 열정으로

새로운 임무, 국산 텔레비전 생산 168

내 손으로 설계한 금성사 동래 공장 173

본사 기획부장 승진과 ‘떡고물’ 거절 183

대기업을 떠나 새로운 개척지로 189

그리운 나의 은인 가와다케 씨 200



5 부 바람 속의 등불처럼 일가를 이루다

수호천사 아내 자랑 210

세 아들과 여섯 손주들 217

유별난 딸과 사위 박노해 223



故 김해수 연보 1923~2005 236

저자 소개

김해수,김진주

아버지 김해수 (지은이)

1923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자랐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가서 도쿄고등공업학교에 진학했다. 1943년 일본 군부에 의해 인천 조병창의 전기주임으로 발령 받았으나 탈출해 강원도 산골로 숨어들었다. 강원도 광산에서 전기 책임자로 일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고 1945년 고향 하동에서 ‘창전사’를 개업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첩첩산중 시골마을을 다니며 빛을 밝히는 스타 엔지니어로 활약했다. 해방 직후, 좌우익 분쟁에 휘말려 수감되었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폐결핵을 앓고 소안도에서 요양을 하던 차에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전란 중에 부산 국제시장에서 ‘화평전업사’를 열고 미군 PX의 라디오 수리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1958년 공채 수석으로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국산 라디오 1호’(금성 A-501)의 설계와 생산을 책임졌다. 그때부터 1969년까지 ‘국산 TV 1호’ 설계 등 금성사의 신제품 개발을 주도했으며, 거듭되는 실패 속에 부품 국산화를 통한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어나갔다. 1960~70년대 성장가도에 오른 한국 전자산업사의 중대한 고비마다 엔지니어 김해수의 발자취가 새겨졌다. 80년대 격동하는 민주화운동의 파고 속에 딸과 사위(박노해 시인), 아들이 구속되는 고난을 겪었으며, 1987년 일본인 사업가의 도움으로 (주)신기상역을 개업해 말년까지 전자산업의 현역으로 일했다. 2005년 8월, 83년의 생애를 마감하고 타계했다.



딸 김진주 (엮은이)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라디오 한번 듣기 위해 줄을 서던 시절, 엔지니어 아버지가 만든 국산 1호 라디오를 친구 삼아 자랐다. 고명딸로 부모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며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시절에 서울로 올라왔다. 1978년 이화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한 후, 백병원 약사로 근무하던 중 경동교회 청년부를 통해 민주화운동에 합류했다. 당시 노동운동을 이끌기 시작한 노동자 박기평(박노해 시인)을 만나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은 산업화의 주역인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며 민주투사가 되어갔다. 5년간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며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82년 명동성당에서 박기평과 결혼하고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1989년부터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중앙위원으로서 월간 『노동해방문학』의 주요 필진으로 활동하다 군사정권에 의해 수배되었다. 1991년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4년 동안 양심수로 옥고를 치뤘다. 1998년 박노해 시인이 8.15 특사로 풀려날 때까지 석방운동에 주력했고 2000년부터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아버지 김해수가 노환과 지병으로 고통 받던 중, 아버지의 시대와 생애를 기억하기 위해 매주 육필원고를 받아 기록해왔으며 2007년 『아버지의 라듸오』를 펴냈다. 현재는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경상남도 거제에서 약사로 일하며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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